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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

유에이 졸업으로부터 20년, 신소 히토시는 아직도 죽어버린 애인과 함께한다.


그리 강하지 않은 빌런이 저지른 사건이었다. 유명한 지명수배범도 아니었고, 그저 그 날 제 충동을 이기지 못해 저지른 일이었다. 도박에 빠져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린 후 갚지 못해 쫓기던 중년이, '혼자 죽기는 외롭다'며 사람이 많이 다닐만한 길목에서 폭탄을 들고 나타나서 그 순간 폭발해버린, 그런 일이었을 뿐이다. 폭발은 순식간에 일어나 대처할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 마와리미치 마와루가 있던 것도.

그 날은 개학을 앞둔 어느 여름날, 마와리미치와 신소가 외출허가를 받아 시내에서 데이트를 하기로 했던, 마와리미치 마와루의 생일이었다.


"응, 메리 크리스마스, 마와루."

그 이후로 2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신소 히토시는 마와리미치 마와루를 만난다.


마와리미치가 처음 모습을 보였을 당시에는 신소는 자신이 겪은 충격이 커서 미쳐있는 줄 알았다고 한다. 히어로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일하며, 주위 사람뿐만 아니라 본인조차도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져, 이내 자신이 미쳐버린 줄 알았던 것이다.

그 날 그냥 학교에 있었더라면...
그 날 그 길목에 가지 않았더라면...
그 날...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 갑자기 여름 교복을 입고 한겨울날의 신기루처럼 나타난 죽은 애인을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마와루?"
"히토시! 메리 크리스마스! ...왜 이렇게 어두컴컴하게 해 둔 거야? 내가 히토시는 안 그래도 어두워보이니까 더 밝게 해두고 살라고 했잖아!"

그렇게 갑자기 크리스마스 이브에 나타난 애인은, 26일 아침이 되면 사라져버렸다. 환각도 아니었고, 유령도 아니었다. 유령이라면 물체가 닿지 않고 통과해버렸을테니, 여름 옷의 마와리미치에게 목도리도 둘러줄 수 없었을 테니까. 주위 사람에겐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미도리야 이즈쿠에게 마와루와 함께 가서 조심스럽게 이 상황을 말했더니 '많이 힘들겠지만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며 PTSD에 대한 심리학 도서만 몇 권 선물받았을 뿐이었다. 무엇보다도, 제 애인도 이 상황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는 듯 했다.

"내가 죽은 거? 정말 한순간이었지! 나도 히어로과에 갔었어야 했나? 그러면 피할 수 있었을까? 음... 그래도 나는 싫어, 뭔가 재미없었을 것 같... 히토시가 재미없다는 건 아니고, 아이, 몰라! 그런데 진짜 나 왜 여기에 있지? 산타클로스의 선물 아닐까? 히토시, 선물로 나를 빈 거야? 헤헤, 로맨틱하다~"

몇 년동안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알아낸 것은,
1. 나타나는 것은 24일 자정이 지난 이후 처음 눈을 감았다 뜨면 그 앞에 나타난다.
1-1. 해외에 있을 땐, 그 곳의 시각을 기준으로.
2. 사라지는 것은 26일 자정 이후 잠에서 깨어나면 사라져있다.
2-1. 해외에 있을 땐, 1-1과 동일.
2-2. 잠을 안 자려고 노력해봤지만, 26일 자정 이후 10분 이내로 불가항력으로 잠에 빠져들게 된다.
3. 옷은 입을 수 있고, 음식도 먹을 수 있다. 그러나 하복을 제외한 의류는 사라진 자리에 덩그러니 남게 된다.
3-1. 추위는 타지 않는 듯.
4. 매 해의 기억은 축적되는 듯 하다. 마와루는 "눈을 뜨면 다시 24일이야, 나는 매일 히토시와 있는 것 같아." 라고 했다.
5. 마와루의 개성은 발동되지 않는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었다.

어찌됐든 마와루의 재등장으로 신소는 일상 복귀에 더욱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애초에 히어로에게 슬퍼할 시간이 충분하게 주어지지 않기도 했지만, 주위에서 보기에도 신소 히토시는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살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마와리미치는 "며칠 전... 그러니까 히토시한테는 몇 년 전, 내가 처음 여기에 다시 왔을때보다 훨씬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다행이야! 나 덕분인가? 아무래도 서포터의 자리가 크긴 하지?" 라며 기뻐하기도 했다.


"오늘은 무슨 맛이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가?"
"응, 청포도랑 키위가 들어간 생크림 케이크."
"역시! 거기에 블루베리까지 들어가면 좋을텐데, 적포도도!"
"...따로 부탁해서 추가해뒀어."

올해에도 마와리미치는 신소의 곁에 나타났다. 그리고 26일이 되는 날에는 또 사라질 것이다.

"선물은? 선물은?"
"...아직 이브잖아, 내일 아침에 잘 찾아봐."
"치..."
"내 선물은 없어?"
"내가 나타났잖아! 마와룽 등장! 히토시가 빌었던 선물 아니야?"

갑자기 나타났던 것처럼 어느순간 갑자기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는 애인과 한 순간이라도 더 많은 추억을 쌓고자, 올해에도 신소는 산타에게 소원을 빌었다. '이 날들이 조금 더 유지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렇다고 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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